Angels of Death2017. 9. 6. 22:50


Rondo







  무덤은 아늑했지만 시원하지 않았다. 점점 줄어드는 산소를 조금이라도 받아들이기 위해 내쉬는 숨이 약해져갔다. 멀어지는 불규칙한 발소리와 기계의 둔중한 작동음을 들으며 에드워드 메이슨은 깨달았다. 무덤 안은 지독하게 외로웠다. 문득 그가 묻어주었던 수많은 사람들이, 가끔은 기이한 자세로 잠든 모습들이 떠올라 에드워드 메이슨은 힘겹게 몸을 웅크렸다. 상처의 고통보다도 피에 젖어 축축해진 흙의 감촉이 선명했다.

 

이런 결말을 원하지 않았어. 다가오는 죽음을 향해 던지는 말은 과녁에 닿지 못하고 떨어지는 화살처럼 맥없이 추락했다. 육체의 죽음은 온전히 자신만의 것이었으나 지극히 개인적이고 쓸쓸할 따름이었다. 생의 끝에 도달해서야 완전하게 가질 수 있는 죽음을 쥐고, 에드워드 메이슨은 어둠 속에서 눈꺼풀을 끌어내렸다.

 





 

  죽음에 임박했을 때 떠오르는 마지막 기억은 그것이 전부였다. 밝고 환한 빛을 따라가지도 않았고, 육체의 고통을 잊어버리고 허공으로 떠오르지도 않았다. 그저 어두운 새벽녘에 문득 눈을 떠 창가를 바라보듯, 에드워드 메이슨은 무덤을 덮은 비석 위에 앉아 있었다. 새삼 의복이 깨끗해지거나 상처가 아무는 일도 없었다. 흙과 피로 범벅이 된 모습으로 에드워드 메이슨은 갑자기 깨어났다. 이런 걸, 깨어났다고 해도 되는 걸까. 턱을 괴고 오랫동안 생각에 잠겼지만 딱히 대체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잠이 든 적도 없었는걸. 손에 쥐었다고 생각했던 죽음은 이제 그의 앞에 길고 긴 레일처럼 펼쳐져 있었다. 에드워드 메이슨은 딱히 신을 믿지도, 구원을 바라지도 않았으나 육체가 소실되었다는 사실만큼은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비석 아래로 내려가 부패가 시작되었을 생전의 몸을 들여다볼 수도 있었지만, 에드워드 메이슨은 그 자리에 붙들린 것처럼 움직이지 않았다.


  건물이 붕괴되는 소리와 진동을 느끼지 못했다면 그 후로도 에드워드 메이슨은 자신의 비석 위에 앉아 천천히 옅어져갔을 것이다. 사고마저도 완전히 소실되면 완벽한 죽음을 가질 수 있었을 테니까. 늘 운이 없었던 그는 죽은 후에도 사색에 잠길 시간을 빼앗긴 채 불타는 건물 위로 솟구쳤다. 건물의 지하는 완전히 붕괴되어 자신의 육체는 거대한 무덤 안에 잠겨버렸다. 에드워드 메이슨은 두 명의 생존자가 각기 다른 차에 실려 건물을 떠나는 광경을 물끄러미 지켜보았다.


  이대로 저 둘의 결말도 정해진 것일까? 잭이 체포되는 모습은 꽤나 즐거웠다. 에드워드 메이슨은 뒤집어쓴 자루 아래에서 웃음을 터트렸다. 누구도 듣지 못하는 웃음은 산소 마스크가 씌워진 채로 구급차에 실려가는 레이첼의 모습을 보자 이내 사그라들었다. 이상하리만치 시큰한 감각이다. 육체가 없어도 감각할 수 있다는 사실은 그 후로 오랫동안 에드워드 메이슨이 그 모습으로 존재할 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지만, 당시의 그는 인지하지 못했다. 연기가 피어오르는 건물 사이로 보이는 초라한 새 둥지와 떠나는 새들, 그들이 인사처럼 남긴 지저귐이 에드워드 메이슨을 사로잡았으므로. 새 소리. 그는 작고 연약한 동물들이 내는 생명의 소리에 언제나 푹 빠져들곤 했다. 작은 존재들은 너무나도 쉽게 자신만의 것이 된다. 죽기 직전에 내뱉는 소리는 얼마나 강렬하고 아름다운지.

 

  빈 둥지에는 몇 개의 깃털이 흩어져 있었다. 손을 뻗어 잡으려 해도 깃털 너머로 통과되는 손끝에는 아무것도 잡히는 것이 없었다. 이젠 보고 듣고 말할 수 있어도 사물에는 닿을 수는 없구나. 에드워드 메이슨은 선선히 그 사실을 받아들였다. 운이 없는 대신 그는 타고난 영리함이 있었다. 무엇보다 가만히 부유하고 있기에는 십여 년 간의 생 속에서 쌓아올린 성실함이 그를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았다. 이제 뭘 할 수 있을까. 웅성대는 사람들의 머리 위를 미끄러지며 에드워드 메이슨은 할 일을 찾아다녔다. 그저 떠다니며 사람들을 구경하려고 이렇게 일어나진 않았겠지. 진화되는 불길 사이에서 분주하게 뛰어다니는 소방관 한 명의 어깨에 앉아, 에드워드 메이슨은 속삭이기도 하고 건물의 구조를 손짓으로 가리키기도 했지만 부질없는 일이었다. 이런 일은 마음에 들지 않아. 흘러내리는 땀을 훔치는 그의 옆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에드워드 메이슨은 곧 몸을 일으켜 건물을 떠났다. 그 후로도 건물에 돌아가는 일은 없었다.

 

 



 

 

  묘지 주변에는 자신처럼 배회하는 존재들이 많았다. 대개는 멍하니 자신의 비석을 내려다보다가 불쑥 무덤 아래로 꺼지곤 했다. 멍청이들. 아름다운 조각이 새겨진 비석 위에 앉아 에드워드 메이슨은 조소를 내뱉었다. 몇 분 지나지 않아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솟아나는 머리통을 세어 보는 것도 슬슬 지겨워지고 있었다. 전혀 아름답지도, 재미있지도 않아. 통통한 볼이 이내 샐쭉해졌다.

 

  막막할 정도로 긴 자유 속에서 할 수 있는 일들은 적었다. 도서관에서 책의 페이지를 넘기는 사람들 옆에 앉아 독서에 함께 열중해보기도 했지만, 원하는 책을 직접 펼쳐 볼 수 없다는 답답함이 곧 그의 독서를 중단시켰다. 취향대로 책을 진열해두었던 B4층이 문득 그리워지곤 했다. 그러나 되돌아가도 꺼내볼 수 없기는 마찬가지다. 가끔 그는 자신처럼 사방을 배회하는 존재들에게 말을 걸었다. 드물게 온전한 사고를 가진 이들도 있었지만, 그들은 육체를 벗어난 자유로움에 도취되어 이내 에드워드 메이슨을 남겨두고 허공으로 솟구치곤 했다.


  정말이지, 다들 배려심이 부족해. 점점 혼잣말을 하는 시간이 늘어났을 무렵, 에드워드 메이슨의 머릿속에는 자신과 마찬가지로 건물 안을 관리하던 사람들이 떠올랐다. 불타는 건물을 빠져나오면서 확인한 그들은 제각기 처참한 모습으로 눈을 감고 있었다. 어쩌면 자신처럼 세상을 돌아다니고 있지 않을까. 그러나 어디서부터 그들을 찾아야 할지, 뾰족하게 떠오르는 수가 없었다. 육체가 없어진 뒤로 시간과 공간의 제약을 받지 않고 빠르게 이동할 수 있었지만, 그 이상으로 특별한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오래 전에 읽었던 오컬트 책에서는 강력한 힘을 가진 유령들이 종종 등장했다. 그러나 자신은 그들과 다르다. 물건을 움직일 수도 없었고 누군가의 꿈에 들어갈 수도 없었으며, 육체를 점령하는 일도 할 수 없었다. 페이지 너머의 세계로 들어갈 수 없는 독자처럼 그저 사람들의 삶을 엿볼 수 있을 뿐.

 

  -그것만으로도 멋지지 않아? 사람들은 혼자 있으면 창피한 일들을 줄곧 하잖아.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았다고 믿으면서 안심하겠지. 우리가 한참 전부터 뒤에 서 있는 줄도 모르고.

 

  드물게 제대로 된 화법을 구사하는 남자였다. 남자는 에드워드 메이슨의 대답을 기다리지 않고 아파트의 벽을 통과해 유유히 사라졌다. 이게 멋지단 말이야? 남자의 말은 잔잔한 동요를 불러 일으켰다. 할 일이 주어지지 않는 건 괴로운 일이다. 하고 싶은 일이 있음에도 그러하다면, 시도조차 할 수 없다면 생전과 무엇이 다를까. 에드워드 메이슨은 남자의 말을 조금은 수용해보기로 했다. 할 수 있는 일을 함으로써 원하는 것을 얻는다. 언제나 그가 원하던 사실을 확인하기 위해, 에드워드 메이슨은 도로의 표지판을 따라 빠르게 이동했다.


  남자처럼 무턱대고 벽을 통과해 누군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엿보고 싶진 않았다. 에드워드 메이슨은 자신의 기준에 걸맞는 사람들을 골라냈다. 상냥하고, 똑똑하고, 새처럼 아름다운 목소리를 가진, 잠들 수 없는 그에게 새로운 꿈을 꾸게 만들어줄 사람들을 찾았다. 그가 찾아낸 사람들은 때로는 십대 소녀이기도 했고, 죽음이 가까워진 고령의 노인이기도 했으며, 두 손을 모아 경건하게 기도할 줄 아는 젊은 남자이기도 했다.

 

  에드워드 메이슨은 그들의 침대나 소파, 사무실의 한 구석에서 그들에게 어울리는 무덤의 디자인을 생각했다. 비석의 재질과 형태, 무덤의 크기, 적당한 습도의 흙, 잘 짜여진 아름다운 관, 머릿속에 떠오르는 수많은 무덤의 행진은 한동안 에드워드 메이슨을 흐뭇하게 만들었다. 정말이지, 나라면 할 수 있을 텐데 말이야. 오랫동안 흙과 돌을 만져온 두 팔은 단단했고 두 다리는 점차 힘이 붙어 가고 있었다. 더 많은 사람들을 편안한 쉼터로 인도할 수 있었건만, 멍청하고 난폭한 녀석 때문에 자신의 계획은 모두 엉망이 되어 버렸다. 덕분에 내 죽음은 최악이었어. 전혀 아름답지 않았다고. 더러워진 옷을 내려다보며 에드워드 메이슨은 지금쯤 감옥 안에 있을 남자를 떠올렸다.


  자신이 가지지 못한 신체 능력을 가졌지만, 머리가 텅 비어 있는 탓에 번번이 제물을 놓치면서 짜증만 부리는 남자였다. , 결국 그 녀석도 목적을 달성하지 못했잖아? 사형 판결 뉴스를 본 순간 차오르는 기쁨에 에드워드 메이슨은 말 그대로 공중을 날았다. 아아, 역시! 멍청한 녀석에게 어울리는 결말이야! 하지만 행방을 알 수 없는 레이첼의 존재는 건물을 떠나던 날부터 에드워드 메이슨의 기억 한 편을 탁하게 물들이고 있었다. 가장 이상적인 죽음을 선물해주고 싶었던 존재가 이제는 손이 닿지 않는 곳에 있다. 레이첼에 대해 거의 다 알고 있다고 생각했건만, 또다시 새장 밖을 향해 날아가는 새처럼 멀어져버렸다. 지금쯤 어디에 있을까, 레이첼?

 

 

 

 



 

  시설의 창문을 들여다보며 에드워드 메이슨은 레이첼이 돌아오기를 기다렸다. 레이첼의 행방을 알아내는 일은 그다지 어렵지 않았다. 시간은 마르지 않는 바다처럼 많았고 그가 통과하지 못하는 벽은 없었으며 듣지 못할 정보는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지금까지 지켜보았던 사람들을 모두 외면할 정도로 레이첼의 존재는 에드워드 메이슨을 강하게 끌어당겼다. 한 눈에 반해버린 상대를 어떻게 다른 사람들과 동일한 선상에 놓을 수 있을까. 심장이 있었다면 지금 엄청 두근거렸을 거야. 마침내 열리는 문 사이로 레이첼의 하얀 얼굴이 드러나자 에드워드 메이슨은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레이첼!

 

  흰 원피스를 입은 레이첼은 건물 안에서 만났던 그대로 아름답고 텅 비어 있는 얼굴로 천천히 서랍을 향해 다가갔다. 레이첼이 자신의 몸을 통과했을 때, 에드워드 메이슨은 차가운 바다에 몸을 던진 듯 온 몸이 시려오는 감각을 느꼈다. 새삼스러운 일이 아니었음에도 그의 사고는 일시적으로 정지되었다. 사랑하는 레이첼. 아름답게 잠들게 해주고 싶었어. 벗을 수 없는 자루 너머에서 일그러지는 표정을 아무도 눈치 채지 못하는 것만이 에드워드 메이슨을 조금이나마 위로해 주었다. 나이프를 쥐고 침대에 누운 레이첼의 머리맡에 웅크려 앉은 채, 그는 한참 동안 가만히 달빛에 반짝이는 금빛 머리카락을 내려다보았다. 무덤 안에서 눈을 감을 때처럼, 온 몸을 둥글게 말고 싶은 기분이 지독하게 그를 사로잡았다.

 

  누군가가 창문을 두드리기 시작했다.

 

 

 

 

 

 

 



  한 인간을 만난다는 것은 하나의 수수께끼에 의해 깨어 있게 된다는 뜻이다. 비석 위에 앉아 에드워드 메이슨은 오래 전에 읽은 책의 한 구절을 곱씹었다. 눈앞에서 레이첼이 또다시 잭을 향해 손을 내미는 것을 본 뒤로, 그는 늘 비웃었던 존재들처럼 멍하니 한 자리를 배회하기 시작했다. 아무런 생각도 하지 않고 멍청하게 맴돌다 보면 언젠가는 점차 옅어지며 사라질 수 있지 않을까. 바람과는 달리 상심은 깊었고 생각은 끊임없이 이어졌다. 한 번도 멍하니 앉아 시간을 낭비한 적 없었던 그에게 넘쳐나는 시간은 너무나 버거운 존재였다. 자신을 통과하는 사람들을 그저 구경만 하는 것도 괴로울 따름이었다.


  이 상태로는 어떤 것도 내 것이 될 수 없어. 상상만 하는 건 이제 즐겁지 않아. 그의 생각은 흐르고 흘러 생전의 기억을 거슬러 올라 쌓아왔던 지식에 도달했다. 왜 깨어났지? 어리석은 질문임을 알면서도 에드워드 메이슨은 답을 찾고자 했다. 마침내 한 구절을 떠올렸을 때 그는 자신을 세상에 붙들고 있는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 수많은 질문을 던졌다. 참을성과 끈기, 성실함이 요구되는 시간이었지만 무덤을 팔 때보다 덜 수고로운 일에 불과했다. 한 인간, 하나의 수수께끼, 깨어 있음, 질문의 폭은 점점 좁아져 결국 레이첼이라는 대답을 향해서 나아간다. 왜 내가 아니었어, 레이첼? 나는 아직 대답을 듣지 못했어. 혼잣말을 되뇌이는 에드워드 메이슨을 묘비를 찾은 사람들이 무심히 지나쳐갔다. 그의 맞은편 묘비 앞에 웅크려 앉은 사람들은 다정한 목소리로 무덤의 주인에게 말을 걸었다. 바보같긴. 그 무덤의 주인은 정 반대편에서 제자리를 빙글빙글 돌고 있다구. 생각을 방해하는 사람들을 피해 에드워드 메이슨은 묘지의 구석으로 몸을 피했다.

 

  몇 번을 거듭 생각해봐도 자신이 아니라 잭인 이유를, 에드워드 메이슨은 찾아낼 수가 없었다. 이대로라면 레이첼은 그 녀석 손에 엉망으로 죽겠지. 제대로 된 무덤에도 들어가지 못할 거야. 그러나 삽은커녕 깃털하나도 쥘 수 없는 자신이 어떻게 다가올 일을 막을 수 있을까. 에드워드 메이슨은 또다시 다가오는 상심의 기운을 털어내려는 듯 고개를 저었다. 시간은 무한하고 자신에게는 잭이 가지지 못한 끈기가 있었다. 생각해보면, 조금 더 열심히 생각해보면 자신이 원하는 것을 가질 수 있는 방법이 있을 지도 모른다. 막연하게 떠오르는 희망을 위해 에드워드 메이슨은 생각의 바다를 헤엄쳐 나갔다.


  생은 유한하지만 죽음은 무한하다. 언젠가 이 검은 바다를 건너기 위해 레이첼이 하얗고 아름다운 얼굴을 내밀겠지. 그 때 레이첼을 마주할 수 있어. 그건 잭같은 녀석은 할 수 없는 일이야. 이 긴 시간을 함께 보낼 수 있는 건, 나처럼 레이첼을 배려하는 사람만이 가능한 일인걸. 무서운 걸 참고 레이첼을 마중하러 갔던 것처럼, 나는 기다릴 수 있어. 나에게는 시간이 아주 많으니까. 멋진 일들을 많이 만들어 줄 수 있는걸. 레이첼이 ‘yes’라고 말해주기만 한다면, 뭐든지 분명 멋지게 이뤄줄 수 있을 거야. 왜냐면 여긴, 내 구역이니까.

 

  





 

[Rondo] 회선곡주제가 같은 상태로 여러 번 되풀이되는 형식의 음악

Posted by S.mojo